어젯밤에 도서관에 내려갔다 온 선생님이 밤 사이 큰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들고 올라왔습니다. 조마조마했지요. 그러나 밤새 하늘은 잔뜩 흐리기는 했지만 비를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일어나 아침 먹고 설거지를 마칠 때 쯤 비가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참고 참았다가 세차게 내리던 비도 잠시, 부슬부슬 내리다 분무기처럼 떨어지더니 개고, 또 오다가 개고 점심밥 준비할 때부터 해가 났어요. 소명이는 밤에 잘 때 재선이가 이불을 다 가져가서 추웠답니다. 열이 나서 아침에 밥 대신 복숭아를 먹고 기운을 차렸어요. 재선이가 소명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오전에는 어제 못 한 선택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눈 모둠은 식물에서 물감을 짜 내어 그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로 했는데 아까워서 못 쓰고, 대신 물감재료인 식물을 그렸습니다. 코 모둠은 향수를 5분만에 만들고 향수통 꾸미기를 1시간 반동안 했습니다. 입 모둠은 새로운 맛 도감을 만들었어요. 귀 모둠은 소리 상자에 소리를 담았고 손 모둠은 칡 염색을 하려고 했는데 잎이 젖어 염색이 잘 안 되어 잎을 짓이겨 천에 물들도록 비볐습니다. 발 모둠은 호랑이굴에 가서 보자기에 물건을 놓고 눈 감고 발의 감각만으로 물건 알아맞추는 게임을 했습니다. 호용이가 아주 잘 하네요. 스스로도 발 감각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점심을 먹고 숲 속 운동회를 열었습니다. 1등하면 숯불에 구운 안동 간고등어를 마음껏 먹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운동회는 모두 네 종목인데 첫 번째 종목은 숲에서 본 동물과 식물의 모양과 행동을 흉내내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도마뱀' 하고 외치자 네 발로 엉덩이를 흔들며 진흙길을 헤집고 뛰었습니다. 높은 데서 바라보니 꼬리만 달면 영락없는 도마뱀이네요. 다음으로 '칡에 붙은 개미'라고 선생님이 말하니 모둠 식구들이 한 줄기 칡넝쿨이 되어 이리저리 넝쿨 순을 뻗었습니다. 칡이파리를 좋아하는 보라샘네 개미들이 1등이 되어 3점을 얻고, 한울샘네 개미들은 2등으로 2점을 얻었습니다.



다음 종목은 글자만들기입니다. 나.의.산.에.서. 다섯 글자 가운데 두 글자를 만드는데 반드시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야 하고 글자를 가장 정확하게 만든 모둠이 이기는 게임입니다. 원근법을 이용하여 산과 에를 만든 한울샘네 모둠이 1등, 계곡의 나무와 돌을 있는 그대로 활용한 은정샘네 모둠이 2등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종목은 새 둥지 만들기. 자연 재료로 둥지를 만들고 모둠 식구들이 모두 들어가야 합니다. 제한 시간은 20분. 멋진 아빠새 윤하의 날개가 돋보인 완준샘네 모둠이 1등, 아름다운 둥지 한울샘네 모둠과 몸집이 큰 민성샘이 뱀이 되어 작은 둥지안의 새들을 잡아먹는 애란샌메 모둠이 공동 2등을 했습니다. 마지막 종목은 돌탑 쌓기. 보라샘네 모둠은 각각의 돌에서 돌을 모아 하나의 돌탑을 쌓았고 은정샘네는 <건우와 직녀> 돌탑을 만들었습니다. 두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선죽교'처럼 "우리 서로 만나서 소원을 이루자"는 뜻을 담았대요.


애란샘네 모둠 수현이는 돌을 눈에 맞아 다칠 뻔 했습니다. 그러느라 탑을 다 못 쌓았는데 기초공사가 튼튼하여 "이 탑처럼 튼튼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합니다. 한울샘네 돌탑은 아름다운 둥지 위에 자리잡은 예술 탑이었습니다. 이 탑을 설명한 호섭 도슨트의 말을 들어보실래요? "아름다운 백그라운드에 아름다운 돌탑을 쌓아서 간고등어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 나쁜 기운을 막으라고 하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연코 으뜸은 완준 샘네 '별과 하트 돌탑'입니다. 구해는 말도 참 예쁘게 하네요. 우리 소원은 자라면서 계속 변한다, 그것처럼 사람들이 돌을 하나씩 올릴 때마다 돌탑이 커져서 꼭대기의 별이 반짝반짝 빛나길 바란다고요. 돌탑쌓기는 1등 20점, 2등 15점, 3등 10점이 걸려 있는데 완준 샘네가 1등이 되어 한울샘네 모둠을 역전했습니다. 최종 결과는 완준샘 모둠 23점, 한울샘 모둠 22점, 은정샘 모둠 13점, 보라샘 모둠 3점, 애란샘 모둠 2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땅이 젖어 숯불구이는 내일 해 먹기로 했습니다.

운동회를 마치고 한 판 씻었습니다. 첫 번째 흉내내기하면서 진흙탕에 구를 때 비가 쏟아지더니 다른 종목을 할 때는 햇빛이 아이들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어쩌면 날씨가 그리도 때에 맞춰 변해주는지요. 서울과 강원도에 물난리가 났다던데 우리는 필요할 때만 이렇게 비가 내려 주시니 산신령님께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인사했습니다. 우리를 예쁘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 재미있었답니다. 어젯밤부터 상호, 재민, 재혁이는 자기들 텐트를 노래방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뭇가지 하나 세워놓고 마이크래요.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잘도 부릅니다. '밤나무 아래' 사회자는 윤서와 김유진이었습니다. 아이들끼리 친해지면서 할 말도 많아 모둠활동 보고와 건의사항들이 쏟아집니다. 윤서는 하나하나 차분하고 야무지게 건의사항들을 처리해 나갔습니다. 몇몇 아이들이 내일은 마지막 밤이니까 원하는 친구들이랑 잘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현명한 윤서는 그것도 좋은 생각인데, 친구가 많은 사람도 있고 친구가 없는 사람도 있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합니다. 건우는 지금 같이 안 자고도 시끄러운데 친구끼리 자면 더 시끄러워서 안된다고 진단합니다. 하하, 조금 더 의견을 모아 내일 다시 짜 보기로 했습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이렇게 마음 놓고 흙 만지고 비 맞으며 놀았던 적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온통 진흙범벅인데다가 땀과 비에 젖어 쉰내 나는 아이들이 어쩌면 그렇게 예쁜지요. 도서관에 옷 한 벌씩 남겨두고 오길 잘 했습니다. 마친보람잔치 땐 그 옷으로 갈아입고 부모님을 맞이해야겠습니다. 지금 이 모습대로는 부모님들이 오셔서 못 알아보실지도 몰라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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