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택이가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물가에 가서 살살 물을 쓰다듬기도 하고 선생님들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5시부터 일어나 텐트 안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도 없이 앉거나 누워 있었습니다. 물 소리 벌레 소리 바람 소리로 <2011 나의 산에서> 세 번째 날이 열렸습니다.

오전에 선택활동을 하기로 했는데, 내일도 모레도 계속 오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프로그램을 바꾸었습니다. 어제 땅이 젖어서 못한 모둠끼리 밥해먹기를 오늘 하기로 했어요. 해가 반짝반짝 빛나는 여름날 산에서 아이들이 파를 다듬고 감자를 까고 호박을 써는 모습은 평화와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은정샘네 '날개달린 무지개' 모둠은 비빔밥, 묵밥, 토마토설탕절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거 참 메뉴가 아이들스럽지 않지요? 호섭이네 가족이 즐겨 먹는 외식 메뉴랍니다. 그걸 어떻게 만드는지 선생님도 모르는데 아이들이 국물내고 김치 다지고 국간장과 참기름 뿌려 묵국수와 묵밥을 만들었습니다. 화덕을 파서 불 지피느라 건우가 애썼습니다. 승준이는 불 지피는데 하도 부채질을 하여 소중한 부채가 망가졌어요. 한울샘네 '동막골 프리덤' 모둠은 밥과 채소를 볶아 오므라이스를 만들고 감자전을 부쳤습니다. 애란샘네 '마루나루 모둠'은 비빔밥과 과일 아이스크림을 만들었습니다. 냉장고도 없는데 아이스크림을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얼음에 소금을 뿌리고 그 위에 우유담은 그릇을 올린 다음 우유를 계속 저어주면 아이스크림이 된다고 형준이가 말했습니다. 두시간동안 전동거품기로 돌려야 한다는데, 형준이를 비롯한 모둠 아이들이 삼십분동안 숟가락과 거품기로 휘저었습니다. 아이스크림맛 나는 시원한 우유가 되었네요. 아이스크림을 만드느라 그랬는지 밥이 부족했는데 아이들이 순식간에 흩어져 여기저기서 얻어먹고 돌아왔답니다.


완준샘네 '우비는 내 친구' 모둠은 수박냉면과 화채를 만들었습니다. 수박을 파내어 화채를 하고 수박껍질은 냉면그릇으로 쓴답니다. 윤하의 아이디어였지요. 수박국물이 들어간 냉면 육수는 생각보다 시원하고 달콤하면서 담백한 맛을 내었어요. 꽤 괜찮았어요! 그렇지만 고추장을 넣은 비빔냉면은 케찹 맛이 난다고도 하고, 글쎄... 보라샘네 숲속 탐험대 모둠은 김치볶음밥과 수박화채를 했습니다. 산에서 담백한 음식만 먹던 아이들이 반질반질 기름기 많은 김치볶음밥을 보고 개미들처럼 달려들었지요. 밥 먹고 치우는 데 세 시간도 더 걸렸습니다. 다들 맛있게 배불리 먹었어요.

오후엔 자유시간과 모둠활동을 계획했는데, 그래서 오늘 하기로 한 선택활동을 못 해서 아쉽다고도 했지만 대신 실컷 놀았습니다. 놀잇감을 만들기도 하고, 나무에 매어 놓은 그네와 거미줄을 타기도 하고, 동그랗게 모여앉아 '시장에 가면', '아이엠그라운드' 놀이를 하며 구르느라 산에 웃음소리가 메아리쳤습니다. 시장에 가면 아줌마도 있고 애기도 있고 나이키도 있고 뉴발란스도 있고 아디다스도 있고,... 그러다 나이키도 있다! 해서 틀렸다고 웃고요. 틀렸다, 하면서 와르르 웃고는 다시 시작입니다. 순하고 재미있게 놀아요.



시간이 지나니까 서로 친해져서 아이들이 선생님한테도 슬슬 마음을 열면서 다가옵니다. 날씨가 좋고 공간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생활이 안정되니 서로 믿고 의지하게 되고, 그래서 함께 하는 이 시간이 더욱 즐겁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볕에 청소하고 빨래하고 샤워도 하고 눅눅한 이불을 널어 말리면서 저녁이 되었습니다.



오늘 '밤나무 아래'는 재선이와 소명이가 사회를 봤습니다. 하루가 어땠냐고 묻자 밥도 맛있었고 요리가 재미있고, 씻어서 기분 좋다, 계곡물이 시원하다, 처음엔 무서웠는데 이젠 안 무섭다, 불편함 없이 마냥 즐겁다, 비오다 날씨가 좋으니 해의 소중함을 알겠다, 여러가지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멧돼지가 산에서 내려올 때를 대비해 데려다 놓은 두 마리 개, 힘찬이와 마루를 보고도 아이들이 반가워했고요.

여기 동막골 산에 우리가 와서 지낼 수 있게 허락해주시고 도와주신 김갑수 주민자치위원장님이 요 아래 옥수수밭에서 요즘 옥수수를 수확하신다는데 우리가 도우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에 모두 좋다고 하여 목요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일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괴산 한살림 매장에 장보러 나갔다가 만난 이웃 한 분이 아이들 먹이라며 옥수수를 두 자루 주셔서 오늘 간식으로 먹었는데, 나윤이는 오늘 먹은 옥수수도 그 분이 주신 것인지 궁금해했습니다. 작은 아이가 어찌 그런 걸 다 챙기는지요. 참, 오후에 과수원 하시는 소명이네 집에서 복숭아를 여덟 상자나 가져다 주셨습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꿀복숭아, 달콤한 향기가 산에 맴돌아요.

남화샘은 예리가 빨래를 해서 좋았답니다. 쉰내가 많이 났었대요. 예리는 빨래를 하도 해서 손이 마비되었다며 말랑말랑한 작은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유진은 은정샘에게 여기는 진짜 이상하고 다르다고, 엄청 이상하고 좋다고 하면서 언제까지 학생으로 올 수 있고 언제부터 선생님으로 올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성인이는 첫날 배운 나뭇잎배를 아주 정교하게 발전시켜서 물에 띄웠습니다. 엄마 생각에 힘들던 재혁이는 이제 잘 적응하여 사회자를 하겠다고 합니다. 끝날 때까지 씩씩하게 지낼 것 같습니다. 새벽에 세혁이가 이불에 오줌을 누어 완준샘네 준혁이, 호준이, 윤하, 구해, 예리, 성인이가 아침에 세혁이 옷을 빨러 갔습니다. 아침부터 자기 옷도 아닌 빨래를 하다가 재미있어서 자기 옷도 가져다 빨았습니다. 밤에는 호용이와 여자아이들 일곱 명이 램프 때문에 시비가 붙었습니다. 자고 일어나 내일 이야기하자는 선생님 말에 여자아이들이 "다음 캠프에 오면 만날 수도 있는데, 오늘 밤 이렇게 자면 마음이 편하겠어요?" 하면서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자겠다고 합니다.

스물 세살 수용샘은 아이를 많이 낳아야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며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즐거워했습니다. 편하고 좋아서 계속 살고 싶다는 선생님도 있습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나 자신을 봅니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내가 가진 나쁜 습관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는 것을 봅니다. 그럴 때면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에 어디론가 숨고 싶지만, 우리가 아이들을 계속 만나려고 하는 것은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우리도 함께 자라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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