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날이 밝았습니다. 이제 정말 숲 속으로 들어가 숲 친구들과 사귀어 보려고 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비가 부슬부슬 옵니다. 동쪽 하늘을 보니 산 안개가 아지랑이처럼 산 위로 올라가 걷히고 있습니다. 오전에 내리던 비는 점심먹기 전 그치고 반짝반짝 빛나는 날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오전에 선택활동, 오후에 계곡탐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눈 모둠은 종이로 만든 망원경과 돋보기를 들고 숲을 구석구석 들여다보았고, 코 모둠은 숲속에 가서 여러가지 냄새를 맡고 그 냄새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돌을 갈아서 코팩을 만들어 코에 붙이고 다녔습니다. 입 모둠은 먹을 수 있는 풀을 먹어보고 도감을 그렸고요, 귀 모둠은 숲으로 가서 자연의 소리를 듣고 각종 재료로 소리 상자를 만들었네요. 물로 된 상자 보셨어요? 손 모둠은 잎이랑 나무로 집과 마을을 만들었고 색깔 실로 거미줄도 만들었습니다. 발 모둠은 숲 안쪽까지 들어가 땅을 파서 그 흙을 가져와 관찰하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군인 전투용 식량도 발견했대요.



날이 개자 아이들은 빨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빨랫줄을 길게 묶어 놓으니 알록달록 크고 작은 옷들이 줄줄이 걸렸습니다. 준원, 나윤, 형준, 수현, 승준, 현택, 재희, 재혁이는 나무집 근처에 지내는 아이들이 다니기 좋으라고 밤나무 아래로 내려오는 언덕배기에 계단을 만들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것들을 봤는지, 땅을 파고 계단처럼 윤곽을 지어 나무판을 놓고 진흙을 퍼다 부어 놓으니 근사한 돌 나무 계단이 되었네요. 아직 마르지 않아 위험하니 특히 선생님들은 다니지 말라고 당부도 잊지 않습니다.



점심을 먹고 계곡탐험을 갔습니다. 호용이랑 재혁이는 텐트에 남아있겠다고 했는데 달래서 데려갔는데 씩씩하고 즐겁게 다녀왔어요. 쓰러진 나무를 넘어 엉덩이까지 잠기는 웅덩이도 건너 70도로 경사진 바위도 오르고 계곡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거슬러 갔다가 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악어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악어는 어디론가 숨고 도마뱀 꼬리만 보았네요. 간식으로 싸간 떡과 수박도 꿀맛이었지요. 해가 떠서 참 반갑고 좋았습니다.



계곡탐험을 다녀와서 머리감고 씻고 나니 아주 시원하고 개운했어요. 저녁밥을 먹고 모둠활동 시간이 되니 이제 한 숨 돌려서 모둠 이름도 정하고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찬찬히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모둠활동을 마치고 '밤나무 아래' 모였어요. 예리와 도원이가 모두모임 사회자를 하겠다고 벌떡 일어났어요. 선택활동과 모둠활동을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를 듣고 건의사항을 발표하는데, 남자 여자 시간을 정해서 씻는 문제, 선생님들 회의할 때 여자텐트에 여자들이 두명밖에 없으니 무섭다는 얘기, 램프가 모자라니 서로 모여있을 때 쓰자는 얘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교사평가 끝나고 선생님들이 올 때까지 수민이네 텐트와 정화네 텐트에서 모여 놀기로 했고, 오늘저녁 씻을테니 여자들은 계곡에 오지 말라고 했던 남자아이들은 추워서 내일 씻겠다고 했답니다. 졸린 김예리 사회자는 눈을 반쯤 감고 "시간이 다 됐으니 내일 사회자는 내일 뽑고 오늘은 모두모임을 끝내겠습니다"하고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도원이의 끝 인사는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였습니다.
1학년 호준이는 6살 세혁이더러 꼬마라고 부르면서도 이것저것 잘 챙겨주네요. 세혁이가 있어서 모둠 아이들이 서로 챙겨주니 더 빨리 친해지는 것 같습니다. 소명이네 모둠도 이유진언니, 재선언니, 승현언니가 번갈아 돌봐주고 있고요. 재혁이가 엄마생각나서 울었는데, 어제 운 재민이는 "오늘 자고 세 밤만 더 자면 엄마를 볼 수 있으니 괜찮다"고 합니다. 윤서와 영섭이가 텐트줄에 걸려 넘어져서 조금 다쳤어요. 희서와 호섭이가 6학년 형 노릇을 아주 잘 해주고 있네요, 워낙 자상한 아이들이라. 계곡탐험할 때도 여자 동생들 안아서 깊은 물 넘겨주고 손 잡아주고, 머리도 감겨주고 텐트도 보수해 주었어요. 윤서는 밤에 램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평소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는 지금이 정말 재미있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대요.

우리는 비가 오지 않는 것을 바랐던 것일까? 아닌 것 같아요. 비가 오지 않고 해가 쨍쨍한 날이 아니라 여러 가지 날씨, 해와 바람과 비에 따라 달라지는 숲의 모습을 아주 다양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비가 와도 늘 같은 모습으로 오지 않고 해가 떠도 마찬가지지요. 구름 낀 산봉우리 사이에 투명하고 말갛게 빛나는 하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오늘 참 고마웠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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